(redz) <디스 민즈 워> 톰 하디 멋있다. 끝. 영화

(사진출처 www.cine21.com)


피사체로는 그저 그렇지만 일단 여러 컷이 붙고, 활동사진이 돌기 시작하면 멋있어지는 인간들이 있다. 배우 체질인 인간들. 톰 하디도 그 중 하나다. 괜찮은 매력남이지만 개성도 아우라도 부족한 크리스 파인과의 대결에서 압승.

영국인이라 그런지, 굉장히 쿨하다. 특히 마취총으로 크리스 파인을 기절시키는 신의 별것아닌 코미디를 빵 터지게 살리는 연기에 감탄했다. 서바이벌 게임장에서 죽자사자 달리는 모습도.

다음 배트맨에서 베인으로 나온다던데, 쭉 이어 온 무거운 필모도 좋지만 이런 가벼운 영화에서도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근데 한국 사람 중에 표정이나 느낌이 진짜 똑같은 남자가 있는 것 같은데, 누군지 또렷하게 생각나질 않는다. 진구를 많이 닮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인물이 진구는 아닌 것 같은데...

톰 하디 외에는 별로 높이 살 부분이 없는 영화였다. 괜찮은 설정과 나쁘지 않은 액션,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코미디, 딱히 쳐지지 않는 전개 속도의 나쁘지 않은 팝콘 무비. 단 리즈 위더스푼이 두 남자의 구애를 받는다는 설정은 억지스럽다. 아주머니... 용감하게 도전하신 건 좋은데 더 어울리는 배역을 찾아보심이...

★★☆




(redz!) 치즈 인 더 트랩, 불길한 치즈의 냄새 문화일반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극적 복수는 ‘이야기’다.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 김혜리, 김병욱과의 인터뷰 서문 중에서

서사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생겨난다. 일상 속에 존재하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 가운데 몇몇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건져올려 하나의 실로 엮어나가면 이야기가 생겨난다. 소심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늘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고, 사라지고, 변신한다. 

소심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서사가 생겨나고 발전하는지, 그 매커니즘을 보여주는 웹툰이 순끼의 '치즈 인 더 트랩'이다. 주인공 홍설은 초년생 시절에는 활달했으나 휴학 이후에 좀 더 조용하고 우울해진, 평범한 여대생이다. 그녀 마음속에서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온갖 음모론은 별나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평범하다. 누구나 남을 오해하고, 남이 나를 오해할까 두려워한다. 순끼는 그 감정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적당히 소심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감은 이내 스릴러가 된다. 때로는, 잘린 말 머리가 이불 아래에 놓여 있는 '대부'의 장면 못지않게 긴박하다.

많은 독자들이 스릴러적 연출을 그리워하지만, 캠퍼스 로맨스의 외피를 쓰고 있을 때도 컷과 컷 사이에서는 불길한 냄새가 감지된다. 마음 속 함정에 놓인 치즈가 고린내를 솔솔 풍겨온다. 단절된 소통과 필연적 오해에 기반하고 있는 이 웹툰이 어떤 결말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redz!) 뒤척이다 <내가 사는 피부>를 생각하다 영화




잠자리에서 잠시 뒤척이다 며칠 전 관람한 <내가 사는 피부>의 라스트신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 신이 작품 중 가장 알모도바르다운 장면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나자 잠이 더욱 멀리 달아났다. 결국 잠이 올때까지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한다. 마감 기간인데 난 왜 오밤중에 블로깅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사는 피부>의 시놉시스는 더없이 알모도바르적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접하면, 스크린 속의 공기는 그 동안의 알모도바르 영화와 딴판이다. 극단적인 색채와 기괴한 피사체들이 만들어 온 묘한 아름다움이 없다. 각 신은 멋지지만, 작가 고유의 붓터치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정보 없는 관객에게 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줬을 때 알모도바르의 것임을 눈치챌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영화는 줄거리를 따라가기 급급하다.

그 줄거리도 문제다. 성형외과 의사가 집안에 미모의 여성 베라를 가둬놓고 쫄쫄이만 입힌 채 강화피부 생체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는데 어느 날 호랑이 분장을 한 강도가 집에 숨어들고, 이 강도는 여자 하인의 아들이며, 베라를 강간하다 뒤늦게 들어온 의사에게 총 맞아 죽고, 알고 보니 의사와 호랑이는 이복 형제이며 의사의 아내가 호랑이와 바람난 적이 있고, 또 알고보니 베라는 비센테라는 남자를 의사가 성전환시킨 존재인데 이는 비센테가 의사의 딸을 강간하려다 실패, 결국 딸의 자살을 유발한 놈이기 때문이다...  < 스포일러
대체 이보다 더 알모도바르적인 설정이 가능한가? 하지만 도가 지나쳤다. 완벽하게 미쳐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다보니, 괴상함과 평범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알모도바르 특유의 활력이 사라졌다. 특히 괴상한 외피를 쓰고 있지만 소박한 미덕을 품고 있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아그라도처럼 사랑스러운 인물이 없다.

...여기까지가 영화를 본 직후 든 느낌이었다. 요약하자면 알모도바르의 향이 휘발된, 보통 야한 스페인 예술영화.

그런데 잠자리에 누워 정신이 나가길 기다리던 나는, 웬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영화의 라스트신이 얼마나 알모도바르다웠는지 알게 됐다.
말썽부리던 아들이 여자가 되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는 신. 어머니에게 "제가 비센테에요"라고 말하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갑작스럽게 자막을 올려버린다. 그 옆에는 어머니의 애인이자 비센테가 남자일 때 치근덕대던 여성이 서 있다. 이 장면은 알모도바르가 가장 잘 다루는 몇가지 관계를 품고 있는데 모자관계(그리고 성전환을 통해 이제 모녀관계가 된)와 모성애, 피가 섞이지 않은 여자간의 연대, 성 정체성이 애매해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조우와 연대 등이 그것이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눈빛은, 영화 전체의 차가운 톤과 달리 정념에 차 있다. 단 한 번의 삼자대면으로 알모도바르는 자신의 인장을 찍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원래 인장이라는 건 그림을 다 그린 뒤 마지막에 쾅 찍는 도장 아니던가. 이 라스트신은 말 그대로 인장이었다.
그리고 베라와 두 여성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이제까지의 알모도바르 영화가 말해준다. 자막이 올라가는 뒤편에서는 괴상하지만 아름다운 연대의 드라마 한 편이 시작될 것이다.

라스트신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순간 내 마음속의 별점이 반 개 올라갔다.

★★★☆



(redz!) 개를 키우는 것 단상


반려동물들은 대부분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천진한 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길들여진 종, 개의 눈은 조금 더 구슬프다.

인간에게 복종할 숙명의 동물, 인간에게 꼬리를 흔들며 즐거워하는 동물을
한 가지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개에게 씻을 수 없는 원죄를 지은 것 아닌가.
종 대 종의 원죄 때문에, 집에서 개를 키우게 된다면
늘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게 될 것 같다.
다른 동물들의 건방진 몸짓과 달리
나를 보고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드는 동물을 보게 된다면
너는 왜 스스로 자유를 포기했니, 내 조상이 너의 조상을 그렇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 것 같다.
(물론 비글같은 악마들도 있고 집을 뛰쳐나가는 개도 많지만
집을 잃어버린 개가 수백킬로미터를 걸어 
집(?)을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오가는 것은
우리가 개를 대체 무엇으로 생각한다는 말인가)

대충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와중
고향집에서 키우는 식육견들을 만났는데
하필 새끼들이 개장에 가득할 때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개를 반려자인 동시에 식량으로 보는 한국식 관점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의 입장에서 모든 육식을 반대하면 모를까,
개가 다른 동물보다 더 고귀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에
근거는 없다.
다만 사람이 만들어낸 개라는 종족의 숙명 때문에
우리는 미안함을 느끼고, 그래서 보신탕에 둥둥 떠 있는 몇 가닥의 터럭을 보면
그렇게 기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위의 이유로
나는 아직 반려동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 생명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redz!) 쿠라이 쿠라이

티아라의 'Cry Cry'를 듣다 문득 은지원이 '올빼미(All FAmy)'를 발표한 것이 언제였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2005년의 일이다. 티아라는 나를 6년 전의 추억 속에 빠져들게 했다.

...라는 것은 개소리고, '크라이 크라이'는 '올빼미' 이후 6년 만에 배출된 '가장 괴상하게 웃긴 노래' 부문 단독 후보다. 작곡가 조영수와 제작자 김광수, 그리고 촌티 아이돌 티아라가 만들어낸 환상의 삼중주.

'롤리폴리'의 과도한 복고컨셉(나중엔 심지어 남자 교복을 입고 나온 효연이 껄렁거리며 "얘들아 가자~" 이런 말까지 지껄이던데, 이런 무대 누가 연출한거야... 좀 도를 넘은 것 같지 않았니?)이 '써니'를 보고 감명받은 김광수의 지시였음은 '쿠라이x2'를 통해 명백해졌다. 이건 어디 봐도 '푸른 소금' 보고 감명받은 사람이 지시한 컨셉 아닌가. 아니, 라틴을 표방한 노래 도입부에 왜 어린이성가대 합창과 완전 비장한 둥글게 서서 손 하나로 모으기 퍼포먼스(like 삼총사)가 왜 들어가는거야? 이 노래 끝나면 한 명 총맞고 죽어?

구체적으로 뭐가 웃긴가 하니

헤이, 티 웨~라
: 혀에 벌 쏘인 것 같은 이 발음은 무엇을 의도한 것인가... 이 그룹의 이름은 '작은 왕관'을 뜻하는 영어 단어 티아라와 동음이의어 아닌가? 그런데 왜 티아라가 아닌 티웨~라라고 발음하는 것인가? 혹시나 해서 tiara를 유럽 5개국어로 들어봤지만 어느 언어도 '티웨~라'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혀를 굴리면 본토발음인 줄 아는 촌티는 이 노래 내내 엉터리 영어 및 초딩 영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새빨간 장미처럼 가시같은 말로 날 찌른 너 Uh Uh Uh 
: 넌 마치 문신처럼 지우려 할수록 깊게 패여 Uh Uh 
문신이 지우려 할수록 깊이 패이나?
수갑이라고 하든지.

Cry Cry Can't you see the music 
: 더욱 깨알같은 웃음 코드가 숨어 있다.
'캔츄씨더뮤직' 이거 공감각적 심상이다. 근데 너무 노골적이어서, 작사가가 "이번 노래에는 공감각적 심상으로 센스를 더해야겠다"며 야심차게 가사를 써제끼는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소리없는 아우성' 요즘 몇학년 교과서에 나오더라? 딱 그거 배우고 감탄한 중등교육 이수자 수준. 센스가 없으면 억지로 쥐어짜지 말란 말여

불꽃처럼 뜨겁게 You're ma boy 
: 이게 진짜 웃긴다. '불꽃처럼 뜨겁게 유아마보이'가 무슨 뜻이야?
이런 초딩 영어 쓰면 앞뒤 안 맞는 표현도 그럴싸해보일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려면 어려운 영어를 쓰던지 라임이라도 맞추던지 ㅋㅋ 이런 가사를 쓰려면 센스도 없고 영어도 못해야 한다. 둘 중 한 가지 덕목만으로는 이토록 웃긴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심지어 혼자 작사한 노래도 아닌 것 같던데, 작사가들 토익 점수 다 합쳐면 300점 정도 나올 듯

Break it! Come on Come on Yo 
Make it! Come on Come on Yo 
Take it! Come on Come on Come on 
: 스멀스멀 올라오던 웃음은 이 대목에서 폭발한다. 아니 이게 무슨 태사자 시절 랩이야? 조금 전까지 카메라에 총이라도 쏴갈길 듯 비장한 표정으로 노래하던 가수가 '커먼커먼요'라는 여음을 부르는게 말이 되는가. 물론 '커먼커먼요'를 하는 동안에도 비장한 표정은 유지된다. 그래서 진짜 웃긴거다. 게다가 나도 짤 수 있을 것 같은 예상 그대로의 안무까지 곁들이니까.
특히 마지막에 '테잌잇 커먼커먼요' 다음 '꺼머언~' 하고 애절하게 길게 빼는 건 몸빼바지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촌티

Uh Uh Yeah Let's dance
: 이 부분에 등장하는 전보람의 댄스 브레이크를 통해 간신히 이 노래가 라틴풍(을 의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부분에선 거의 묻어나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아마 빨간 마후라를 소품으로 활용한 댄스가 나오던가? 

T-ARA Time to love 쉿!
: '티웨~라'가 한 번 더 등장한 다음 '타임 투 러브'라는 정체불명의 마지막 한 마디로 노래가 끝난다. 뜬금없고 개연성 없는 노래라는 기조는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타임 투 러브는 옛날 노래 TTL을 의도한 것 같은데, 자기 노래 제목을 슬쩍 끼워넣으며 센스있어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주로 힙합 가사에서 자주 보이는 방식이며, 요즘 가요들이 힙합적 가사쓰기의 요소(라이밍이나 자기과시 등)를 많이 빌려쓰고 있으니 이런 전략을 택했을 것이다. 근데 개연성이 있어야 될거아녀. 그 뒤에 롤리폴리 보핍보핍 이런 말 막 집어넣으면 그게 센스냐?

이 모든 개그 코드는 시종일관 등장하는 'uh uh'를 통해 하나의 일관된 웃음으로 승화된다. 내적 논리는 없으나, 외피에 같은 페인트를 칠해서 일관성을 얻었다고나 할까? 대체 'uh uh'에 에코 먹여서 수십번 집어넣는 건 또 언제적 센스야
그리고 예쁘장한 티아라 멤버들 몸매를 확 죽이는 촌스러운 의상컨셉 - 언젠가 지연이 입고 나온애매한 길이의 탑은 몸매 좋은 댄스가수를 완전 허리 굵은 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 과 시종 카메라를 노려보는 비장함이 진짜 웃긴다.
아, 얘네들 너무 촌스러...
웃으면서 무대를 보다보니 제목조차 박명수의 '쿠라이 쿠라이'를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지경.

그리고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곡이 4~5곡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의도치 않은 표절일 가능성이 높다. 창작력 따윈 개나 줘버리고 클리셰에 철저히 의존해 살아가는 조영수의 노래 아닌가...

아무튼 정리하자면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괴상망측한 컨셉과 가사에 90년대 후반, 혹은 더 과거로 거슬러간 시기에 발표했어야 할 것 같은 촌티가 줄줄 흐르는' 노래인데다 믹싱의 완성도도 시망이다. 

그동안 티아라 노래는 촌스럽거나 이상한 부분이 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도를 넘어서니 마침내 컬트적 웃음의 차원으로 승화된 느낌

전에 '보핍보핍'에 관해 쓰면서 세운 가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노골적으로 성을 판매하지 않을 때, 티아라는 촌스럽거나 따분해진다. 이번엔 촌티가 도를 넘어 독특한 재미로 승화됐다는 것이 차이점! 낄낄낄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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