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z!) 부시와 함께 잊혀진 '엘라의 계곡'의 아이들 영화

<엘라의 계곡> (2007)
폴 해기스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수잔 서랜든

<엘라의 계곡>을 봤다. 진실을 추적하는 늙고 노련한 토미 리 존스가 리드하는 영화인데다가 조쉬 브롤린도 함께 출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연상시켰다. <노인>과 <엘라> 모두 당대 미국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엘라>는 직접 이라크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반면 <노인>은 우회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단, <노인>은 원작에 충실한 영화이지만, 코언 형제가 하필 그 때 그 소설을 고른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그린, 믿음이 붕괴되고 있는 서부의 세계는 당대 미국의 반영이다. 봉준호의 <마더>가 갖고 있는 절망적인 정서가 MB시대와 잘 맞물려 보인 것도 <노인>과 비슷해 보인다. 코언 형제는 굉장히 세련된 엔터테인먼트를 시도했을 뿐일 수도 있지만 이 잘 만들어진 작품은 어떻게든 시대와 만난다.
폴 해기스는 <엘라>를 통해 시대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스릴러 장르의 컨벤션을 빌려 오긴 했지만 주제의식에 있어서는 직설화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토미 리 존스이다. 그와 <그랜 토리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비슷해 보인다. 옛 참전용사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종차별의 혐의가 있다. 보수적인 미국의 아버지이고 미국적 가치를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붕괴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며 나름의 방법으로 대항한다.
최근의 미국영화들은 미국을 비판하기 위해 이 보수적인 아버지들을 끊임없이 소환해낸다. (토미 리 존스가 지금 얼마나 다작을 하고 있는가.) 아버지들은 현재의 미국과 마주하곤 한숨을 내쉰다.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이 보수적인 아버지들에게 관객들이 감정이입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주제가 보수적 가치의 옹호로 오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변질된 미국 앞에 그저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가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엘라>를 한국의 군필자로서 보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영화가 군대조직의 '묻기'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라는 것이다. 난 한국 군대를 보는 줄 알았다. 내가 군대에서 규율을 어겼을 때 보고가 올라갈까봐 굉장히 쫄았던 것, 그리고 내 위의 누군가가 묻어줬고 대신 사적인 처벌을 줬던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특히 샤를리즈테론과 말싸움하는 장교가 "그들은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라며 자체징계면 되지 않냐는 말을 당당하게 할 때는 무슨 습자지에 베껴 그린 그림 같았다.

<엘라>는 흠없이 짜인 정교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그리 큰 감흥이 없었다. 이건 개봉 시기의 문제인 것 같다. 미국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면 시대상과 맞물려 꽤 흥미로웠을 것이다. 나름대로 스타캐스팅인 영환데, 샤를리즈 테론이 원톱인 영화가 몇편이나 제때에 개봉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처사다. 수입 과정에서 지체될만한 해프닝이라도 있었나.
오바마 시대의 도래 후 <엘라>를 보는 건 전혀 긴장되지 않는 경험이었다. 오바마 시대에 와도 미국은 여전히 여기저기에 군대를 보내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고 있지만 아무래도 전쟁은 부시와 연관검색어처럼 조직화되어 있다. 사실은 현재진행형이고, 마땅히 긴장되는 경험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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