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씨) 1류 요리사의 계란말이 <엘라의 계곡> 영화


 폴 해기스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아빠가 자주 가던 일식집에서 먹었던 계란말이가 떠오른다. 계란에 거품을 충분히 내고 풀면 계란 말이에 기포가 생기면서 폭신폭신한 계란 말이가 되는데, 적당히 다시 국물 간이 배어 있는 그 계란말이는 요리의 기초가 탄탄한 주방장의 솜씨였다. 폴해기스의 영화도, 특히 이번 <엘라의 계곡>도 내가 먹었던 계란말이와 같다. 흔히 접할 수 있고, 그다지 만들기도 어렵지 않지만 깔끔하게 잘 만들려면 굉장한 수준의 기본기를 요하는 음식같은. 그는 기본기가 매우 탄탄한 요리사이다. 그에게 최상급의 싱싱한 재료를 주면 최고급 음식을 만들어낼 것이고, 재료가 그저 그렇다 하더라도 평균이상의 맛을 낸다. 전자가 여자복서라는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밀리언달러베이비 - 감독은 클린트이스트우드지만, 각본은 폴해기스가 썼다>라면, 후자는 군대와 이라크전쟁의 이면을 폭로하는 다소 흔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엘라의 계곡>이 될 것이다.

 시놉시스는 이렇기에 꽤 간단한 편이다. 퇴역군인이자, 조국에 대한 자긍심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토미 리 존스)는 군으로부터 어느 날 이라크전쟁에 파병된 아들이 탈영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하게 된다. 그러던 과정에 아들의 죽음을 접하게 되고,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군대라는 곳, 이라크라는 곳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흔하지만 꽤 무겁고, 아들의 죽음을 파헤쳐가는 과정의 미스테리적 요소가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극은 시종일관 일정 수준의 긴장감만을 유지하면서 전개된다. 나는 여기서 폴 해기스의 새로운 장기를 발견하였다. 바로 '완급조절'이다. 스토리라인은 복잡하지 않고, 결말이 쉽게 예측되는 단순한 플롯임에도 극 중 내내 주의를 끄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극이 미스테리극으로 흘러가 주제 의식을 약화시키지도 않는다. 굉장한 실력이다. 이 실력은 토미 리 존스의 아들 마이클과 이라크 전쟁터에 관한 진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관객은 끝까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지 못하고, 단편적인 사실들만 하나씩 얻게 된다. 그 정보의 정도, 타이밍, 배치등은 영화의 클리셰를 없애는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엘라의 계곡은 성서에서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 싸운 곳이라 한다. 어린 소년이었던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 용감하게 돌팔매질을 했던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강한자에 맞서 싸우는 의로운 용기라는 교훈을 끄집어내지만, 폴 해기스는 여기서 '다윗은 영웅이기 이전에 어린아이였다. 그도 분명히 무서웠을 것이다. 왜 그런 어린 소년이 골리앗에 맞서 싸우게 두어야만 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이 성서의 유명한 이야기를 다른 시각-좀 더 휴머니즘적인 시각-으로 조명한다. <엘라의 계곡>에서 골리앗은 전쟁 중의 이라크라는 지옥과 같은 공간, 다윗은 그 곳에서 이성과 본성의 경계를 흐뜨러뜨리며 공포에 맞서 싸우는 어린 미군 병사에 비할 수 있다.

 폴 해기스는 다윗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를 극 죽에 등장시키고, 주인공이 그에게 다윗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는 장면, 자신이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서 따온 영화의 주제의식을 대사 속에 그대로 등장시키는 등 매우 직접적이고, 다소 촌스럽기까지 한 방식으로 주제를 구현한다. 하지만 2007년 부시 정부에 대항하여 반전 메세지를 담은 시의성있는 영화의 화법으로는 적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적어도 그가 주제를 세련되게 전달하는 방법을 몰라서 이런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출연 배우들(굉장한 호화 캐스팅이다. 토미 리 존스, 수잔 서랜든, 샤를리즈 테론 - 이들은 이름값 이상의 존재감으로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의 호연으로도 영화는 범작의 수준은 충분히 넘어섰기도 하다. 좋은 영화이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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