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z!) 오토튠의 좋은 예 그 자체 단상





한동안 오토튠(오토튠은 엄밀히 말하면 음정이나 톤을 보정해주는 장비이고, 논란이 된 건 오토튠으로 만진 버터바른 기계음)에 대한 설왕설래로 팝계가 시끄러웠는데 이젠 일단락 된 느낌이다. "오토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제이지(선언 자체도 상업적인 전략일 뿐 진지하게 시비를 걸자는 건 아니었지만)가 티페인과 한 무대에 섰고, 그래미에서 티페인과 제이미 폭스가 공연을 펼친 후에 제이미 폭스는 제이지에게 "I apologize to auto-tune, Jay-Z" 라는 말까지 했다. 이쯤이면 단물 다 빠졌다.

그렇지만 오토튠의 중심에 있는 티페인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티페인은 유투브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가수 중 하나이다. 그의 오토튠을 소재로 삼은 온갖 패러디물이 난무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티페인은 유독 자기 자신의 희화화에 적극적이다. 인공지능이 있는 보코더와 티페인이 녹음실의 헤게모니를 두고 심리전을 벌이는 영상이 유독 재미있다. '엘런 쇼'나 '지미 키멜 쇼'에 직접 출연해 오토튠을 소재로 한 유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쯤 되면 가수인지 광대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아니, 그는 자신이 광대라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된 곡조차 코미디언인 론리 아일랜드와 함께 한 'I'm On A Boat' 일 정도로.

그가 굳이 숨기지 않는 남자라는 사실을 가장 단적으로 반영하는 예가 아이폰 앱인 'I Am T-Pain Auto-tune'이다. 이 앱은 한 마디로 오토튠 장난감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면 이를 티페인같은 목소리로 바꿔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별 걸 다 팔아먹는 지독한 상술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시각도 맞지만, 이 앱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Be a singer. 이 앱의 소유자는 유치한 수준이긴 해도 정말 티페인에 뒤지지 않는 노래를 선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수는 뭐가 특별한 사람인가? 작금의 가수들은 일반인에 비해 딱히 우월한 성대나 음감의 소유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티페인은 당당히 커밍아웃하는 것이다. '당당히'를 '별 생각없이'로 고쳐도 무방하다.





팝 컬쳐는 테크놀로지와 함께 진화한다. 그리고 테크놀로지는 예술로 가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영화계에서, 디지캠의 등장 이후 독립영화 찍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 것과 비슷하다. 오토튠은 기술이 창작자들을 끝없는 수련의 연속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는 한 증거다. 이제 팝계에서 중요한 것은 끝없는 수련으로 다져진 기량이 아니라 창의성, 아이디어, 장르의 발전, 흘러가는 맥락 위에서 펼쳐지는 의미 변주의 게임 따위이다. 칸예 웨스트는 오토튠으로 여러번 재벌구이한 앨범 <808 & Heartbreak>를 내며 자신의 음악을 '팝 아트'라고 규정지었는데, 칸예의 이 뻘소리는 노렸든 그렇지 않든 한 가지 핵심에 닿아 있다. 오토튠이 노골화시킨 팝의 이런 속성이 미술에서의 팝아트와 밀접히 닿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상업적이라는 면에서 칸예와 앤디워홀의 팝아트는 비슷하다. 거칠게 말하면, 위의 팝아트들에서 상업성을 일정 부분 거세하면 각각 순수미술과 전위음악이 된다. 지금 팝계를 힙합과 일렉트로니카가 점령하고 있는 것은 작금의 가장 창의적인 장르들이기 때문이다. 전위음악의 창의성과 돈이 개입될 때에만 가능한 활력이 결합된 장르들.

물론 이러한 팝의 속성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원래 대중문화의 본질이 그렇다. 한국에서는 자꾸 '보컬 트레이닝'이니 '노래실력'이니 '연주실력'이니 하며 대중음악에 수련이 꼭 필요한 것처럼 몰아가는 경향이 있지만, 만약 그것이 팝의 고갱이라면 대중음악은 골백번 고쳐죽었다 깨어나도 클래식의 저질 하위문화 이상이 될 수 없다. 그 어느 가창력 좋은 가수가 그저 그런 성악가보다 정확한 음감과 풍부한 성량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꼰대 음악선생님이 가요를 무시할 때 뭐라도 반박하려면 '실력'프레임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 노래실력이란 물론 실재하지만 그것은 태초부터 철저히 장르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맥락 없이는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오토튠 그 자체인 티페인을 유의미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의 인기와 파급력이다. 그의 음악은 뭣보다 듣기 좋다. 힙합을 기반으로 해 세련된 비트를 만들고, 유려한 멜로디를 얹은 뒤, 목소리는 귀를 잡아끄는 전자악기 정도의 수준으로 적절히 활용한다. 그의 곡을 듣자면 비범한 재능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는 당대의 프로듀서들이 많지만, 페럴은 지나친 천재라 자신의 실험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며 센세이션을 일으키진 못하고, 칸예는 지나치게 자의식이 과하며, 윌.아이.엠은 최고의 센스쟁이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한 적은 없고, 팀버랜드는 'My Love' 이후 동어반복을 몇 번 하다가 활력을 잃어버렸다. 지금 창조성이 남아있는 이는 티페인이다.

한국에서 오토튠으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지드래곤의 '핥붸커'와 티페인을 비교해 보면 왜 족발도 원조의 원조가 제일 맛있는지 알 수 있다. 지드래곤은 오토튠의 속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곡에 갖다 썼다. 오토튠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깨에 힘 주는 것과 고음 내지르는 것인데 지드래곤은 당당하게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낸다. '에이난이렇게아픈데' 부분이나 '에이치 이 에이 알 티 붸이붸 노웨이' 부분은 귀가 따갑다. 티페인은 고음도 좀처럼 시도하지 않을 뿐더러 성대에 힘도 잘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를 잡아끄는 목소리를 만들어 주는 도구가 바로 오토튠이다. 또한 철저히 유희의 대상일 때 가장 빛을 발하는 오토튠을 쓰면서 지드래곤은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티페인이 오토튠 그 자체라는 표현을 좀 고쳐야겠다. 그는 오토튠의 좋은 예 그 자체이다.

티페인과 제이미 폭스의 그래미 무대는 재미있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소개를 받은 제이미 폭스가 유머러스하게 등장해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잠시 후 티페인이 등장한다. 티페인은 사실 가발을 쓰고 지휘자로 변장해 무대 위에 처음부터 있었다. 일종의 반전을 의도한 연출이다. 그러나 모든 시청자와 관객들은 지휘자가 티페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흥을 주체하지 못한 그가 한참 전부터 특유의 스텝을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페인은 늘 춤을 춘다. 잘 추지는 못하지만 늘 춘다. 무대 위에서 그냥 재미있게 놀다 가는 것이 최선임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심각해 질 필요 없으므로. Nothing serious, Just Tuning.*

*Whistle의 올드스쿨 클래식 '(Noting Serious) Just Buggin''에서 따 왔음.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