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극적 복수는 ‘이야기’다.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 김혜리, 김병욱과의 인터뷰 서문 중에서
서사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생겨난다. 일상 속에 존재하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 가운데 몇몇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건져올려 하나의 실로 엮어나가면 이야기가 생겨난다. 소심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늘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고, 사라지고, 변신한다.
소심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서사가 생겨나고 발전하는지, 그 매커니즘을 보여주는 웹툰이 순끼의 '치즈 인 더 트랩'이다. 주인공 홍설은 초년생 시절에는 활달했으나 휴학 이후에 좀 더 조용하고 우울해진, 평범한 여대생이다. 그녀 마음속에서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온갖 음모론은 별나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평범하다. 누구나 남을 오해하고, 남이 나를 오해할까 두려워한다. 순끼는 그 감정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적당히 소심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감은 이내 스릴러가 된다. 때로는, 잘린 말 머리가 이불 아래에 놓여 있는 '대부'의 장면 못지않게 긴박하다.
많은 독자들이 스릴러적 연출을 그리워하지만, 캠퍼스 로맨스의 외피를 쓰고 있을 때도 컷과 컷 사이에서는 불길한 냄새가 감지된다. 마음 속 함정에 놓인 치즈가 고린내를 솔솔 풍겨온다. 단절된 소통과 필연적 오해에 기반하고 있는 이 웹툰이 어떤 결말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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